들어가며
몇년 전에 '브레인 스토밍'이라 키워드가 필자의 주변을 휩쓴적이 있었다. '제약 없는 의견 제시를 통한 획기적인 아이디어 도출'이라는 슬로건 아래 여기 저기서 브레인 스토밍 회의를 가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브레인 스토밍이라는 것은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우리의 두뇌를 쏟아지는 아이디어로 후드려까, 생각하기 어려웠던 해결 방법을 찾아 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맞다. 하지만 브레인 스토밍 회의에 종종 불려 가던 필자의 결론은...글쎄...였다.
말이 앞뒤가 안 맞다. 분명히 강력한 도구가 맞다라고 이야기하고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결론이라니! 그럼 무엇이 맘에 들지 않아 필자는 '글쎄...'라고 했을까? 이번 포스트에서는 브레인 스토밍 회의를 할 때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한 필자의 넋두리를 풀어 보겠다.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한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자. 어느날 여러분의 팀장이 회의실로 여러분을 갑자기 불러 모았다고 생각해보자. 팀장은 싱글싱글 웃으며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어 보자고 한다. 과연 이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물론 상황에 따라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시간만 날리고 끝나는 의미 없는 회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은 나도 알고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고. 그럼 어떤 상황이 브레인 스토밍에 적합한 환경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자.
1. 주제
브레인 스토밍의 기본 모토는 의견 내는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 생각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고, 아무도 그 생각에 대해 반박하거나 제약을 걸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를 끌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장치 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의미 없는 말들만 오가는 에너지 낭비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브레인 스토밍을 진행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첫번째는 과연 주제의 명확성이다. 주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기간을 제시 할 수도 있고, 사용 가능한 자원들을 제시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달성해야 할 명확한 목표를 제시 할 수도 있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브레인 스토밍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이 회의의 목표가 뭔지 확실하게 인식 시키고 난 후 브레인 스토밍을 진행 해야 한다.
위 예에서의 팀장은 전형적으로 추상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효율적이란 것이 무엇인가? 회의 참여자마다 효율의 정의가 다를 수도 있고, 각자의 직급에 따라 바라 보는 효율의 범위가 다양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낸 의견은 누가 봐도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의견이지만 실행하기에는 준비 기간도 길고 자본도 많이 필요 할 수 있다. 어떤 참가자는 약간 효율성을 개선 할 수는 있지만 미미한 의견들을 제시할 수도 있다. 참가자들은 회의에서 도출해야 할 결과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무의미한 의견들만 낼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평소에 이런 것에 대한 서로의 암묵적인 동의가 잘 이루어져 있는 팀이라면 위의 팀장 처럼 해도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참가자들은 바빠죽겠는데 갑자기 회의실에 불려와 뭔 말도 안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라고 하냐라는 불만만 가득 할 것이다.
2. 회의 참가자의 숫자
이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인 부분인데, 필자는 많은 인원이 참가한 브레인 스토밍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브레인 스토밍의 가장 강점중의 하나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끊임 없는 제시인데 참여자가 많아지게 되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 된다. 나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 또한 경청해야 하는데 언제 내 의견을 낼 수있는 시간이 돌아오는가? 한명당 3분씩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고 하더라도 10명이면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거기에 아이디어 발표 중간 중간 의견이 오가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기다리다 지치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다. 지치게 되면 회의에 집중력이 떨어게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아이디어를 활발히 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브레인 스토밍에 적합한 최대 인원은 3~4명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명확한 논리나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필자의 경험상 저 정도의 인원으로 브레인 스토밍을 진행 했을 때 별 무리 없이 활발한 의견 교환을 했었던 경험에 기반한 것이니 각자의 환경과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염두해 두길 바란다.
3. 회의 참가자의 성향
브레인 스토밍에 참가하는 구성원들의 성향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다. 평소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브레인 스토밍에 적합하다. 거기에 남의 의견을 잘 청취 할 자세가 갖추어진 사람이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소극적 성격의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런 구성원에게 갑자기 브레인 스토밍 회의에 참석해 명확한 목표도 없는 주제에 대해 의견을 이야기 하라고 했을 때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의견을 얻을 수 있을까?
성향과 함께 현실적인 측면에서 조심스럽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 구성원의 말의 무게다. '현실적', '조심스럽게'라는 단어를 굳이 선택한 이유는 말의 무게라는 것이 구성원의 실력과 성향만으로 결정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향적인 성격의 구성원이라고 할지라도 직급이 너무 낮거나, 경력이 짧아서. 아니면 어떠한 이유로든 평소 동료들로 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다던지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브레인 스토밍의 형식상 아무도 반대 하지 않는 의견이라도, 실질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면 그 의견을 낸 구성원이 브레인 스토밍에 참가 하는 것은 시간 낭비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이는 자칫 왕따를 유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조심스레 생각 해봐야 하는 문제다.
4. 회의 참가자의 이해도
앞에서 이야기 해왔던 것들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것 같긴 한데, 개인적으로 참가자들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무엇 보다도 브레인 스토밍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것만 잘 되어 있다면 앞의 세가지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팀장이 갑자기 불러 모아 뜬구름 잡는 주제를 개떡 같이 말해도, 구성원들의 이해도가 높다면 찰떡 같이 알아 듣고 자신들이 생각해 왔던 아이디어들을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뜬금 없는 이야기지만 예전에 즐거 보던 닥터 하우스라는 미드가 있었다. 드라마에서 주로 나오는 내용은 원인을 알 수없는 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들이 어떤 방법을 적용해 볼까 회의 하는 모습이 자주나오는데, 이 모습이야 말로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브레인 스토밍이 아닐까 생각한다. 회의에 참가하는 의사들은 이미 환자의 현재 상태에 대해 빠삭히 파악하고 있고(문제 인식),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 잘 알고 있다(상황 파악). 그리고 아 하면 어 할만큼 자신의 분야에 대해 전문적이다(전문성).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환자에게 적용 해볼수 있는 치료법들을 끊임 없이 제시했고 혹시나 모를 부작용들을 서로 짚어 주어 결국 환자를 살려내는 결과를 얻었다.
참가자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야 말로 브레인 스토밍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다.
마치며
이상 브레인 스토밍을 시작하기 전 고려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런 저런 불평 불만을 가득 썼지만 이렇게 불만 가득한 필자의 경우에도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획기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은 경험도 꽤 있다. 어쨌든 브레인 스토밍은 잘만 사용한다면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잘' 쓰기 위해선 약간의 고민이 필요할 뿐이다.
여기 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브레인 스토밍 또는 회의에 대한 의견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그럼 이만.